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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2 목포신항_김한울 2022.02.09
- 7/19 사전인터뷰_김호윤 2022.02.09
미금역에 하나둘, 모였다. 날씨가 좋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구름 많은 그런 날씨였다. 우중충한 날씨 아래로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희망들의 발자취를 따라걸으러 목포로 갔다. 얼마나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했을까, 도착한 목포는 우릴전혀 반기고 있지 않았다. 금방 탈수해도 아무렇지 않을 듯한 뜨거운 공기와태양빛이 짓누르고 있었다.
간단한 안내를 받고 세월호 선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 뜨거운 태양빛을 가릴만큼 세월호 선체는 굉장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선체와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소름은 공허와 허무가 주는 서늘함이었다. 세월호 선체의 모습은 선 체가 바닷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있었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조개껍데기와 녹슬어 구멍 난 부분들,색이 바랜 페인트와 글씨들. 말이 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나뿐만 아니라 팀원들대부분이 한동안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실로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수많은 영혼과 영혼들이 살아온 시간, 영혼들과 함께 살아온 지금까지는살아있는 영혼들의 시간까지도 바다는 무심하게 세월호와 함께 삼켜버렸다.그런 세월호는 지금까지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답답함과 분노, 슬픔만을 담아냈다. 그런 세월호를 우린 느낀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뭔가 세월호가 우릴 덮쳐 압도하고 있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난 어떻게든 많은 걸 느끼고, 많은 걸 내 눈을 통해 내 머리에 담으려 했다.그것이 역사 속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도 언젠가 내가 지금 느끼는감정과 사실들을 상기시켜 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입을 뗄 수없어서 침묵만 흘렀던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팀원들 각자 세월호 선체와 함께 침몰한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체를 보면 보고,느끼면 느낄수록 원초적인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왜?! 도대체 왜?이 사건은 일어난 것인가? 의문은 다음 의문을 불러오고 점점 여러 의문이 가득해졌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모든 인터뷰를 하기 전에세월호 선체를 가장 먼저 촬영한 것은 충분한 의지와 동기를 실어 주어 주기부족함 없었다. 나는 이후 촬영인 인터뷰를 통해, 팀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의문들의 존재 이유와 이 사건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와 같은 가장 근본의 의문들을 해결할 이유를 선체를 보면서 찾았다.어쩌면 그날 목포의 날씨는 우리에게긴장감과 책임감을 느끼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7월 19일이었다. 커다란 삼각대들과 세 대의 카메라에 비치고 있는 내가 무척어색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당시에는 모니터링을 해보지 못했지만 이후 라벨링을 하며 본 내 모습은 참 웃겼다. 6개의 질문에 답하는 것뿐인 인터뷰였지만 뭐가 그리 떨리고 긴장되었는지 모르겠다. 존댓말을 쓰지 않는 것도 규칙으로 정했던 것 중 하나였는데 존댓말이 계속 나왔다. 여러 번의 동행 끝에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썩 맘에 들지 않았음에도 그대로 허락했던 것이 지금은 조금 후회된다.
‘너에게 세월호는 무엇을 의미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세월호가 나에게 주는 울림과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 매우 힘들었다. 세월호에 대해 무지했다. 세월호라는 세 글자가 주는 아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